꿈과 희망, 한국역사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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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종의 
SUBJECT  
   무궁무진한 우리 한 민족- 독립기념관(강남탐험대)
                                              무궁무진한 우리 한 민족
                      (유관순 열사 사당 ⇒ 유관순 열사 생가 ⇒  천안 독립기념관)


                                                                                          2007.01.14

강남역에 모여서 천안까지 버스로 달렸다. 가는 도중은 자유시간이여서 준범이의 허락 하에 전자사전으로 게임도 하고 동형이의 위트 상식백과도 읽었다. 휴게소에 들려 화장실도 갔다 오고 간식도 먹은 후에 드디어 천안 유관순 열사 사당에 도착하였다.

                                                             유관순 열사 사당

유관순역사 사당에 향 꽂는 곳이 있었다. 동형이는 장난으로 향을 10개정도는 꼽은 것 같았다. 계단에 앉아서 설명을 듣는데 엉덩이가 시려서 잠바를 늘여서 깔고 앉았다. 역시 아침에 유관순 책을 읽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유관순 열사 사당을 다 보고 나서 유관순 기념관을 가기 전에 향을 꽂았는데 짧은 향을 선택하여서 내 장갑에 하얀 가루가 묻었다. 선생님께 여쭈어봤더니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하셔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가보니 앞에 타임캡슐이 있었다.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였다. 안에 계시던 선생님께서 설명을 해 주시려고 하셨는데 안순덕 선생님께서 그냥 선생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셨다. 3·1 운동 모형 전시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삼일운동 도별, 사망자, 건수, 부상자 등이 나와 있는 그림 앞에 앉아서 설명을 들었다.

원래 사람을 때리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는데 일본이 조선 사람은 때려도 된다고 법을 바꾸었다고 한다. 만세 운동을 계획한 사람들은 종교나 정치계 인사들이었지만 실제 행동대장은 바로 학생들이다. 학생들이 모여서 만세운동을 다시 벌일까봐 일본 사람들이 학교를 휴교 시켜 버렸다. 그래서 유관순 열사와 동지들이 기차를 타고 자신이 태어난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옛 지명은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로 다시 내려갔다. 그 곳에서 다시 음력 3월 1일(양력으로는 4월1일)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시위하기 전날 매봉산에 유관순 열사께서 봉화를 올리면 시위에 협조하는 마을들도 봉화를 올리기로 약속하였고 실제 그날 헌병 몰래 매봉산에 올라가 봉화를 올리자 저편에서도 봉화들이 올라왔다.

그 만세 날 아우네 장터에서 태극기를 유관순 열사와 그녀의 친구들이 나누어주었다. 폭력을 싫어하는 마음에 평화시위를 하였지만 일본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마구 짓밟고 총칼을 휘두르며 한명, 한명씩 쓰러뜨려나갔다. 몽둥이 하나 안 들고 있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을까? 독립을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안고 만세시위를 버린 유관순열사와 그의 친지들, 지령리 사람들은 일본헌병에게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거나 돌아가셨다. 유관순 열사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만세 시위날 돌아가셨고, 유관순 열사께서는 16세의 어린나이로 일본사람들에게 고문과 재판을 받았다. 재판을 받을 때 이렇게 말하셨다고 한다. “나는 한국 사람이니 너희들에게 재판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내게 벌을 줄 권리도 없는 것이다. 난 당당한 대한의 국민이다. 나는 떳떳하다. 국민된 도리를 다 했을 뿐이다.” 아무리 법정 모독죄라도 미성년자로서 상상을 할 수도 없는 기간인 징역 7년을 받았다. 유관순 열사께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을까? 유관순 열사께서는 경성의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게 되셨다.

  서대문형무소는 원래는 전국의 있는 모든 죄수를 가두고도 남을 만큼 컸는데 점점 더 많이 가두게 되자 감옥이 모자랄 정도였다고 한다.  서대문 형무소가 지어지자마자 다른 형무소(약 10개)들이 속속히 만들어 지기 시작하였다. 유관순열사께서는 심지어 형무소 안에서도 만세 시위단을 조직하고 대한민국 독립 만세를 외치시다 악질고문으로 돌아가셨다.

사람들이 자기 혼자만 독립을 원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3.1운동을 계기로 민중 전체가 원하는 것을 알고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 일본사람들이 기겁을해서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몇 가지 약속을 하였다. 총독을 군인 대신 문관을 보내주고,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칼을 차고 다니지 못하게 하였고, 헌병도 없앤다고 하였다. 약속을 했지만 그래도 별 달라진 것이 없었다. 헌병이 없어지는 대신 경찰이 3배나 늘어났고, 군인총독대신 문인 총독 사이토가 들어왔지만 나아진 것은 없었다. 3ㆍ1운동은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렇게 설명을 끝내시고 3ㆍ1운동 모형관으로 들어갔다. 음성효과도 있었다. 벽관체험을 하려고 했는데 독립기념관에도 있다고 하셨다. 벽관체험을 본 아이들은 마네킹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소리가 3ㆍ1운동관 안에 있다는 소리인줄 알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유관순 열사에 관한 것이었다. 유관순 열사의 친구의 말씀을 들어보니 유관순 열사께서는 기차 굴러가는 소리가 “대한독립, 대한독립, 대한독립 만세!”로 들린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 정도로 애국심이 강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관 밖에 나가서 태극기 도장을 찍었다. 줄을 서기가 귀찮아서 벽관 체험 하는 곳을 가보니 사람 인형이 있어서 간이 콩알만 해졌다. 웅휘도 데려가려고 했는데 가기가 싫다고 하였다. 현재의 태극기와 3ㆍ1 운동 당시 목판으로 찍은 태극기가 있었다. 3ㆍ1운동 당시의 태극기는 현재의 태극기를 오른쪽으로 90°돌렸고 태극문양이 거꾸로 되어있었다. 기념관을 나와서 나는 재미로 잔디밭을 거쳐서 최단거리로 차에 갔다. 차에 타서 유관순 생가로 옮겨갔다.

                                                               유관순 열사 생가

유관순 생가에는 여러 마네킹들이 있는데 가장 처음으로 눈에 띤 것은 바로 유관순 열사와 친구들께서 태극기를 그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사발로 원을 그리고 칠하는 모형이었다. 웃긴 것은 한 모형이 파랑색 물감이 칠해진 붓을 빨간색 위에 대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빨간색 부분은 파랑색 물감이 한 점도 안 묻고 있었다.

천안에서는 서울에서 만세 운동을 하였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진짜인지는 몰랐다고 한다. 유관순열사가 휴교가 되자 서울에서 돌아와 소식을 전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1945년에 독립을 했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는데 한참 전이었던 이 때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1918년 1차 세계 대전 때 패전국들의 식민지를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독립시켰다.(이때 원래 강대국이 영국이었는데 1차 대전 승전국 미국이 강대국이 되었다.) 민족자결주의란 민족의식을 지닌 한 집단이 독자적인 국가를 형성하고 자신의 정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상이라고 한다. 단 민족자결주의는 세계 1차 대전 패전국에게만 해당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이 아무리 민족자결주의를 원하여도 일본은 승전국이었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동경에도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것이 3.1운동의 본보기이다. 3.1운동은 천도교와 불교 천주교 대표들이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썼다. 민족대표 33명은 폭력을 쓰지 않기로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면 위험하니까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을 하고 학생 한명이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를 하였다. 일본 사람들이 한 짓 중 가장 끔찍한 짓은 바로 제암리 사건이다. 제암리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줄 것이 있다고 교회에 모아놓고 총을 쏘고 불을 질러서 몰살 시켰다. 하지만 그래도 3.1운동은 계속 이어졌다. 선생님께서 민족 자결주의에 대하여 퀴즈를 내셨다. 그 만큼 중요한가 보다. 민족자결주의, 민족자결주의……(외우는 중).

매봉교회로 자리를 옮겼다. 매봉교회에는 유관순 열사 전시실이 있었다. 3.1운동은 3월3일 있을 이태왕(고종)의 장례식에 사람들이 모일 것을 알고 날짜를 잡은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식혜에 독을 타서 고종 황제를 죽였다는 소문이 돌아서 우리나라사람들은 정말 화가 나서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마음이 끓어올랐다고 한다. 사진과 자료들을 둘러보고 차로 이동하였다.

순대집에 도착하였다. 순대국을 먹었지만 순대를 뺀 고기만 먹었다. 병천 특산물이 순대라고 한다. 왜 병천의 특산물이 순대일까? 동욱이 어머니가 가져오신 터키쉬 딜라이트를 먹었다. 맛있었다.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천안 독립기념관

천안 독립기념관을 향해 달렸다. 천안 독립기념관은 민족전통관, 근대민족운동관, 일제 침략관, 3ㆍ1운동관, 독립 전쟁관, 사회ㆍ문화운동관, 대한민국임시정부관, 그리고 원형극장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왔다. 종이컵으로 물 폭탄을 만들려고 했는데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셔서 그냥 마셨다.

민족 전통관에서는 우리가 설명하였다. 제일 처음에 고인돌을 동욱이가 설명하였다. 고인돌은 세 가지 과학적인 방법인 팽창과 마찰력, 그리고 지렛대의 원리를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선조들이 대단하다. 전 세계 고인돌의 40% 우리나라에 있으며, 그래서 우리나라를 고인돌의 천국이라고 부른다. 북유럽이나 일본에 있는 고인돌은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 된다고 한다.

그 후 백제의 칠지도 설명을 웅휘에게 들었다. 칠지도는 근초고왕 24년에 단철로 만들어서 일본에게 하사한 칼이다. 그런데 하사하는 부분이 잘 안보여서 일본사람들은 진상,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사라고 해석한다. 일본 이코노카미 신궁에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금상감이 되어 있고 금으로 덮여있어서 아직까지도 글씨가 보이는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의(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일합병을 인정하게 하기위해 지어낸 것으로 일본이 가야 땅에 임나일본부를 세워 우리나라를 다스렸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이다.)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임나일본부는 있었지만 우리나라 전체를 통치 한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땅을 통치 한 것이었다고 한다.

황룡사는 강미의 설명을 들었다. 황룡사는 자장 법사가 진흥왕 때 짓기 시작하여 선덕여왕 때 만든 것이다. 9개의 나라를 누르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려 때 끝내 몽고인들이 태워버렸고, 그전에도 망가져서 보수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광개토대왕릉비를 보러갔다. 그런데 이것은 조사해온 사람이 없었다. 광개토대왕릉비에 걸려 넘어졌지만(광개토대왕비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나는 거인은 아니다. 그 옆에 잔 두드러기에 걸려 넘어졌다.) 다친 곳은 없었다. 무용총에 들어갔다. 무용총은 무령왕릉과 비슷하였다. 천장에는 별자리도 있었다. 신분의 차를 크기로 표현해놓은 곳과 수박도도 보였다.

무용총을 나가서 거북선을 보러갔다. 거북선은 성지가 설명해 주었다. 거북선은 60~8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1592년 3월 27일 만들어졌으며 당포해전에 출전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판옥선이 커지면 커질 때 마다 판옥선에 등껍질을 씌운 거북선도 커졌다. 거북선에는 연기선, 방납귀선, 그리고 다른 하나(이름이 너무 길어서 쓸 수 없음. 하하하),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비격진천뢰로 갔다. 사진과는 사뭇 달랐다. 비격진천뢰는 나와 동형이, 준범이가 발표하였다. 비격진천뢰는 목곡이라는 약선이 감겨져있는데 화문이 두 개이다. 하나는 날아가기 위한 것이고 하나는 터지기 위한 것이다. 일본사람들을 무찌르는데 도움이 된 무기 중 거북선과 함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기이다. 비격진천뢰 안에 마름쇠를 넣어서 터지면서 찔리게 하였다. 한 일본사람은 비격진천뢰는 대포의 발전의 큰 몫을 하였다고 말하였다. 최초의 시한폭탄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 장군이 성 아래 매복하여 비격진천뢰를 쏘니 이것이 객사에 떨어졌는데 일본 병사들이 다투어 무엇인가 보려고 하다가 ……. 펑파라 팡! 으악! 30명 사망.’ 체험관에서 못들은 건희의 고인돌 설명을 들었다. 개석식이 무엇인지 궁금하였는데 개석식은 사람위에 바로 덮개돌을 올린 것으로 꽤 낮아 보였다.

  근대민족운동관에 들어가자마자 독립문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독립문은  청나라의 사신을 대접하던 영은문과 모화관이 있었던 곳에 그것들을 헐고 만든 것이다. 광무개혁을 한 고종은 자칭 광무황제가 되었고 황제가 되면서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하자 독립문을 만든 것이다.

그 당시 일본은 미리 미국, 영국과 동맹을 맺어서(가츠라테프트조약, 영일동맹)러시아를 함락시킨다. 일본은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을 도와 줄 테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이토 히로부미가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가져간 후 을사년에 을사오적의 찬성 하에 한일 합병이 된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개화파가 생기면서 동시에 위정척사파가 생겼다. 둘은 반대 되는 것이다. 영국이 우리가 조공을 받힌 중국까지 무찌른 것을 보면 서양은 힘 센 오랑캐라고 생각해 막자는 생각이 위정척사파이다.

동학농민군 명단에 이름이 동그랗게 적혀있는 이유를 우리가 여쭈어보자 천도교 이야기를 해주셨다. 천주교가 환영을 못 받은 이유는 제사를 안 지냈고 선교사들이 앞잡이로 여기까지 서양 오랑캐들을 데리고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민들이 믿게 된 종교가 천도교이다. 천도교를 믿는 동학농민군은 관군에게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들어달라고 반란을 일으켰다. 관군이 주동자를 모르게 동그랗게 이름을 적어놓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농민군을 막기 위해 청나라를 불렀다. 청나라는 “옳거니!” 하고 조선을 잡아먹으려고 왔다. 그러자 동학농민군도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의 싸움터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휴전을 하였다. 그래서 관군은 청나라 군인들이 안와도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말을 청나라가 들어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일본도 청나라가 전쟁을 하면 자기도 전쟁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여서 청나라가 한반도에 오니까 일본도 한반도에 왔다. 결국은 청일전쟁이 우리나라 땅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다.

1910년에 합병된 우리나라는 임시정부를 얼른 세웠다. 그리곤 여러 군데 있는 임시정부를(연해주 임시정부, 하와이임시정부…) 가장 적당한 위치에 있는 상해 임시정부로 합쳤다. 이제는 더 이상 비폭력으로 대항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광복군을 만들고, 일본한테 선전 포고까지 하였지만 일본이 항복을 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13도 창의군 모형을 보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13도창의군이 한양을 치려고 했는데 대표 이인녕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삼년상을 치르러 가버렸다고 한다. 어이없다. 그래서 실패로 돌아갔다. 물론 동대문 까지는 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살해를 했다. 안중근을 포함한 11명의 사람들이 단지 동맹을 하였는데 바로 약지를 자르는 동맹이었다. 북로군정서와 광복군, 대한독립군 등 이밖에도 많은 독립군이 있었다. 강우규라는 60세 되신 분들도 노인단에 속하여 독립을 위하여 싸우셨다.

선생님 설명으로는 10년에서 19년까지는 일본이 무단정치를 했는데 그래도 우리 민족이 대항하자, 문화정책을 펴면서 스파이들을 사람들 사이에 막 집어넣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를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바로 무단통제, 기만적 문화통제, 전쟁통제(?), 전쟁 총동원(?)이다. 이것만 보아도 총정리가 된다. 옛날 신문을 보니 “융희황제께서 붕어 하셨다”고 나와 있어 붕어가 뭔지 여쭈어보았더니 황제께서 돌아가시는 것을 붕어라고 한다고 알려주다. 순종의 호가 융희라고 한다.

중간 중간에 벽관체험도 했다. 벽에 네모난 구멍을 뚫어놓고 우리가 직접 죄수가 되어 보는 체험이었다. 그렇게 서있다 보면 사지의 마비가 온다고 한다. 고문하는 것을 보았는데 너무 끔찍하였다. 주리 틀기, 공중에서 매 맞기 등 너무 잔인해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들도 많았다.

2전시관 이후에 좀 시간을 주셔서 눈싸움을 했다. 나는 소나무 가지를 휘두르며 놀았다. 영상관에서 영상물을 많이 보았다. 원산 파업영상은 원산 파업에 관한 것이었다. 원산 파업은 일본사람들이 아무런 안전조치를 해 놓지 않아 한 사람이 죽자 노동자들이 화가 나서 파업을 한 것이다. 별 다른 정보는 없지만 뜻 깊은 애니메이션도 있었다. 한 한복을 입은 여자 아이가 폭풍 속에 휘말려 들렸다가 씨앗으로 변하는데, 그 씨앗이 어디선가 나타난 그 여자아이에 마음속으로 들어가자, 이름표가 한국식 이름에서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후에 폭풍 속에서 다시 나오는 이야기이다. 민족대표 33인의 통일비판이야기도 들어보았다. 이것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얼른 나와서 원형극장으로 갔다. 원형극장으로 가서 영상물을 보았는데 영상이 뱅글뱅글 돌고 흔들려서 속이 울렁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동형이가 하는 행동이 웃겼다. 앞에 있던 발표대에 올라가 손으로 영상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이 영상물은 미래의 관한 이야기였다. 맨 마지막에는 노래로 끝나는데 그 노래가 좋았다. 끝날 때 까지 흥얼거렸지만 지금은 가사를 잊어버렸다. 버스를 타기 전에 탑을 배경으로 대란독립 만세를 외치며 단체사진을 찍었다.

차를 타고 선생님이 준비해온 가필드2를 보려고 했는데 비디오가 작동을 안 해서 그냥 TV를 보았다. 축구(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이 나오는 경기)와 동계올림픽을 보았다. TV는 역시 시간의 마술사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강남역에 다 왔다. 아! 다시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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