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 한국역사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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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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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단양 온달산성을 다녀와서


제목: 고구려 탐사
    2005. 5. 1

역사탐험대에서 고구려 시대를 동욱이, 준법이, 승완이, 동형이, 제윤이, 선화, 성지, 해나, 윤재랑 선생님에게 배웠다. 이번에는 단양과 충주로 갔다.

버스를 타고 단양에 가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고대국가라는 것을 또 국가가 만들기 어려웠고 이 세 나라들도 다 비슷한 과정으로 생겨났고 멸망 과정도 비슷하고 왕들을 보면 나라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

그 중 고구려의 중요한 왕은 나라 세운 동명왕, 수도를 국내성으로 옮긴 유리왕, 땅 넓힌 광개토왕, 오래 산 장수왕, 그리고 백제와 싸우다 죽은 고국원왕과 나라의 기초를 다진 소수림왕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법 ‘율령’도 알려 주셨다. ‘율령’이라는 단어는 ‘률(律)’과 ‘령(令)’이 합쳐져서 된 것이다. ‘률’은 지켜야하는 것이고 ‘령’은 세금에 대한 법이다.

  단양에서는 온달관, 온달산성, 온달동굴 순서대로 갔다. 온달관에는 온달의 생애, 사랑, 업적과, 고구려인들의 생활, 인물, 고분과 단양의 정보들이 있었다. 온달의 슬픈 사랑은 이런 내용이다. 평강공주는 울보여서 항상 아버지 평원왕(평강왕)이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보낸다고 할 때마다 울음을 그쳤다.

그런데 진짜로 그것을 믿고 귀족 대신 온달이랑 결혼하려고 해서 어머니가 준 금과 돈을 갖고 떠났다. 결혼을 해가지고 살림은 공주가 맡고 온달은 글쓰기와 무술을 배웠다. 그래서 음력 3월 3일에 열리는 사냥대회에 일등을 해서 장군이 됐다. 온달이 고구려가 잃어버린 한강 남쪽 땅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온달은 안타깝게 져서 죽었다. 죽고 나서 관에 넣고 힘센 사람들이 관을 움직이려고 하니 관이 안 움직였다. 그래서 평강공주가 울면서 산사람과 죽은 사람은 다르니 한을 풀고 극락으로 가라고 말했더니 관이 드디어 움직인 이야기다.

수양제와 문제 그리고 당태종이 아무리 싸우려고 해도 고구려는 청야수성전(淸野守城戰)(들판을 청소하고 성안에서 싸운다)으로 이겼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안시성 전투이다.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청천강대첩이라는 설 있음)이 있을 때도 지쳐있는 것을 보고 청야수성전을 썼다.

그 곳에서 우리는 고구려의 활이면서 제일 잘 날아가는 물소의 뼈 다섯 개로 만든 활을 봤다. 이 활의 이름은 맥궁(단궁)이다. 그리고 오래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인들은 뭐니 뭐니 해도 철을 다루는 기술이 좋아서 고구려는 철기가 엄청나게 좋았다. 싸울 때는 개마무사가 제일 앞장섰다. 개마무사란 말과 기사 둘 다 갑옷으로 덥혀있는 것이다.

온달산성이 지어진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이 높아서 힘들었지만 온달산성까지 올라가니 무지 상쾌했다. 학자들이 온달이 죽은 곳이 아차산성이냐 아니면 우리가 지금 있는 온달산성인가를 갖고 싸우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따지면 여기가 더 맞을 것 같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이곳에 온달에 관한 이야기들도 있고 한강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달산성이 있는 산을 올라 갈 때는 힘들어서 몇 번 쉬었다. 선생님께서 이것이 띠같이 생긴 태매식 산성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돌을 던지려고 할 때 사람이 이상한 곳에 항상 숨어있으니까 맞을 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내려올 때는 앉지는 않고 서 있는 채 늦게 오는 아이들을 좀 기다렸다 갔다.

온달동굴은 자연이 석회암 광장에서 만든 동굴이다. 뭐니 뭐니 해도 길이 미끄러워서 내리막길에서 미끄럼 타는 것이 제일 재미있었다. 그리고 멋진 것 중에서는 코끼리가 있었고 신기한 점은 이끼가 조명 때문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박쥐는 안타깝게도 사람이 몰려와서 없어졌다. 이제 이 곳에는 박쥐의 똥 구아노가 없어서 곤충들이 안 산다.

버스를 타고 충주 까지 갔다. 그 곳에서 중원 고구려비를 봤는데 네면 중에 한 면은 글자가 보였다. 글쎄 이 돌은 대장간의 기둥, 아녀자들의 빨래판으로 쓰이다가 어떤 사람에게 신기하게 보여 해석을 해 보았더니 고구려의 비석이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 고구려비는 광개토왕비와 다른 점이 고구려비는 받침돌이 있고 광개토대왕비는 받침돌이 없지만 글씨체는 똑같다고 한다. 이 장소가 중요한 이유는 고구려가 여기 까지 왔었다는 증명표가 되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준범이가 좋아해서 퀴즈를 낼 것이라니 어디 한번 맞추어 봐야 되겠다.


(강남역사탐험대)
박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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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퀴즈(고구려)

정준영
201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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