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 한국역사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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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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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탐험대(여주)
                                                      역사탐험대(여주)


                                                                                          2006년 6월 6일(화)

강남역에 모여 버스를 탔다. 그리고 여주로 가면서 휴게소를 한 번 들렸다가 갔다. 그 후에 놀면서 여주까지 쪽 동쪽으로 갔다. 여주에 도착 한 후에 명성황후 생가로 이동 하였다. 명성황후의 복원된 생가 옆에 있는 명성황후 기념관을 먼저 갔다. 기념관에서 가장 먼저 한일은 바로 조선시대 역사 정리이다. 조선 시대 왕족 족보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명성황후 기념관

고려 말에 홍건적을 이성계가 없앰으로써 이성계가 많은 힘을 얻었다. 이성계를 따르는 부류들은 급진개혁파, 정몽주 등이 있는 파는 온건개혁파였다. 그런데 급진개혁파가 이겼다. 급진개혁파는 아예 역성혁명을 일으켜서 나라를 개혁하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고 온건파는 ‘고려의 정치제도 등등을 바꾸면 나아질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성계는 개경에서 왕위를 선양하였는데 공양왕의 왕위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민심을 얻기 위해 이성계는 무력을 쓰지 않고 공양왕의 어머니를 설득하여 공양왕 스스로  자신에게 왕위를 내주게 한 것이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가 신하들을 온 곳에 풀어서 수도로 삼을 명당을 찾던 중 한양을 알게 되었다. 한양 밑에 있는 한강은 동쪽 지역이 높아서 동에서 서로 흐르지만  한양을 꿰뚫는 청계천은 반대 방향으로 흘러 명당수라고 한다. 또한 한양은 외사산 과 내사산으로 겹겹이 둘러 싸여 있어서 명당이라고 하여 이 곳에다 나라를 세웠다.

원래 이곳은 개경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남경이라고 하였다. 1492년에 자리를 잡어 1494년에 정식으로 조선이 시작되었다. 태조는(太祖) 한마디로 큰 왕이라는 소리이다. 나라를 세웠으니 그 나라 입장에서는 당연히 큰 왕일 것 같다. 고려 시대 때 태조 왕건도 마찬가지로 큰 왕이다. ‘조’는 나라에 큰 사고가 있을 때 그 큰 사고를 잘 이끌어 나간 것이고, ‘종’은 나라의 정치를 완만하게 한사람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조선은 약 500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 한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전기와 후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까 사람으로 치자면 소년기 와 노년기가 확 다르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에 7년 전쟁이 임진년(1592)에 시작되었다. 임진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2년 동안 일어났다가 휴전 했다. 그러다가 다시 협정이 깨져서 1597년에 정유재란이 다시 일어났다. 전쟁 후에 흐트러진 나라의 기강을 잡기 위하여 사람들이 예의범절을 중요시해서 조선 전기 까지만 해도 여자들도 그럭저럭 대우를 받았지만 조선 후기 때부터 여자들은 집안에서만 있어야 하고 재산도 장자에게만 갔다.

전기, 후기를 윗 조선, 아랫 조선 이라고도 한다. 옛날 사람들은 왕도 정치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라고 하였다. 왕도 정치는 왕과 신하가 어울리면서 하는 정치이다. 그런데 외척 세력 때문에 왕도 정치가 이루어진 적이 별로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척 세력 이란 왕비의 세력으로 그들이 정치하는 것을 세도정치라고 한다. 세도정치를 외우기 쉬운 방법이 있다.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새도 떨어뜨린다고 세도정치라고 하셨다. 외척 세력은 자기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허수아비 왕을 뽑는다. 순조 때 김조순이라는 안동 김씨 세력이 성종의 유언을 받고 순조를 돌보는 도중에 딸을 왕비로 삼으면서 안동 김씨 세력이 막강해진다. 그 후에 순조가 죽었을 때 철종을 왕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외척 세력 들이 정치를 마음대로 휘두르려면 아무것도 모르는 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월오악도(일월오봉도)가 있었다. 해는 임금, 달은 왕비, 다섯가지 산은 우리나라의 백두대간을 따라 흐르는 산맥의 들어가 있는 산들이어서 우리 땅이라고 생각을 하며 그 사이로 흐르는 물은 우리 백성이라고 추측한다. 명성황후 시해한 칼도 있었다. 매직 비젼도 있었는데 스피커가 고장 났는지 소리가 안 들렸다.   운요호 사진 앞에서 운요호 사건에 대한 것을 알아보았다. 우리가 허락을 안했는데도 운요호가 대포를 쏘면서 우리나라 바다의 깊이를 측정하였다. 그래서 일본과의 싸움의 계기가 되었다. 교지도 있었다. 교지는 임명장이다.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피신을 가서 일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백성들에 의하여 공사관에서 나와 덕수궁으로 옮겼다. 그 곳에서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명성황후 때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이 일어났는데 임오군란은 신식 군대인 별기군보다 구식 군대가 우대를 못 받아서 구식 군대가 일으킨 반란이다.  임오군란을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급료로 받는 쌀을 부피만 채우기 위해 모래를 섞어 주었기 때문에 하급 관리들이 별기군을 훈련시키는 일본 교관과 일본 사람을 습격한 사건이다. 구식 군대는 흥선대원군이 다시 정치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흥선대원군이 다시 정치를 맡으면서 일단 진정되었는데 민씨 세력이 청나라 군대를 요청하여 청나라가 흥선대원군을 청나라로 납치해 가고 하급 관리들을 잡아들인 사건이다.

갑신정변은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가 청나라의 간섭으로 개혁이 가로막히자 우정국 완공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많은 고관들을 제거한 사건이다. 그 후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지만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개화파를 돕기로 했던 일본이 도망가면서 새로운 정부는 3일 만에 무너졌다.

                                                        명성황후 생가

명성황후 생가에 도착하자 안내기가 있었는데 누르니 그냥 음악만 나왔다. 선생님과 함께 들어갔다. 그런데 너무 더워서 그늘을 찾아서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은 엄청난 대립을 이루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바보짓을 하여 살아남았다. 그러다가 풍양 조씨와 은밀하게 이야기하여서 고종을 왕으로 올렸다. 그런데 고종이 부인을 필요로 하자 흥선대원군이 부인한테서 들은 부인감인 민자영을 고종과 결혼 시켰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의 기대와는 달리 왕비가 너무 똘똘했다. 민비는 개혁 정치, 흥선대원군은 쇄국 정치를 펼쳤으니 대립 될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에게 인삼을 주어서 아기를 유산시킬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명성황후가 좋은 사람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명성황후를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생가를 돌아 나오니 명성황후 탄강구리비가 있었다. 이곳은 명성황후의 공부방이 있었던 곳이다. 순종의 글씨라고 한다. 하지만 교재에는 고종의 글씨라고 나와 있다. 어떻게 선생님 말씀하고 선생님이 주신 선생님들이 직접 만드신 교재의 내용이 틀릴까? 정말 궁금하다. 명성황후 생가를 다 둘러보고 비석을 보러 나가는데 동욱이가 문을 닫았다. 그래서 여자들이 좀 늦게 왔다.

                                                                 영릉

영릉에 도착하자마자 신도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들어가니까 제실이 있었다. 제실에는 향로와 음식을 놓는 탁자가 있었다. 제실 앞에서 보니까 꺾어져서 오른쪽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그 곳에는 3가지의 계단이 있었는데 하나만 구름 모양의 난간이 있었다. 이 난간으로는 신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 신이 들어가는 계단 좌우로 난간 없는 계단이 있는데 왕은 이 계단으로 들어온 후 왼쪽으로 빠진다. 그 뒤로 선왕이 나가는 길을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다시 능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원래 이 곳은 세종대왕이 원하던 묘자리가 아니었다. 세종대왕이 원하던 묘자리는 바로 태종의 묘 바로 옆이었다. 그런데 그 곳이 명당이 아닌지라 새로운 자리를 찾고 있었다.  어느 비 오는 날 명당 찾으러 온 음지관들이 연기가 모락모락 피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들어가서 비를 피한 다음에 묘위에 서서 보니 여기가 너무 명당이어서 묘소를 이리로 옮겼다. 그런데 여기 원래 묻혀 있던 사람이 자손들한테 다리도 만들지 말고 제실도 만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자손들이 자신들이 편하려고 다 만들어 버려서 묘자리를 뺏긴 것이라고 한다. 묘 옆으로 올라가 보니까 합장릉 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혼유석이 2개였기 때문이다. 문인석과 무인석도 보였다. 문인석이 한 층위인 것을 보아서 문인 중심 사회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능을 다 보고 내려오니 낮에는 해, 밤에는 별을 이용하여 측정하는 시계인 일성정시의, 때가 되면 스스로 알려주는 자격루,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알려주는 풍기대, 해시계 앙부일구,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는 시계 혼천의, 혼천의를 사용하기 쉽게 바꿔 만든 관측기구 대간의, 대간의를 축소한 소간의, 계절의 변화와 절기의 정밀한 측정을 하는 자치인 규표, 물의 깊이를 재는 수표, 그리고 비의 양을 측정하는 측우기도 있었다. 나는 여태까지 측우기가 그렇게 뚱뚱한지는 몰랐다. 또한 앙부일구가 보여주는 시간과 핸드폰 시계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핸드폰 시계는 동경(경도135도)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경도127도)와는 30분 정도 차이가 있다. 오늘이 망종(芒種)이라고 한다. 망종은 벼,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 적당한 시기로 하지 바로 전 절기이다.

                                                                    점심

점심은 된장찌개에 반찬이었다. 반찬으로는 양파, 브로콜리, 김치, 장조림, 말린 나물, 계란찜이 있었다. 된장찌개에는 맛있는 두부가 들어 있었다. 여기는 밥도 좋았다. 좀 시골 식당을 가면 보통 다 공기 밥을 주는데 여기는 사기밥그릇에다 주셨다. 된장찌개를 다 먹고 나서 밖에 나가 놀았다. 경찰과 도둑도 하고 탈출도 하고 전쟁놀이도 하였다. 엄청나게 재밌게 놀고 나서 신륵사로 향했다.



                                                                   신륵사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인 신륵사에 가서 가장 먼저 한일은 계단을 오르는 것이었다. 계단을 올라가서 부도를 보고 왔다. 108번뇌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6감이라는 여섯 개의 감정 곱하기 여섯 번째 감정의 세 가지 선택, 즉 좋다, 나쁘다, 별로다 곱하기 이것을 깨달은 사람, 못 깨달은 사람 곱하기 과거 현재 미래를 하면 108이 나온다. 수식으로 쓰면 이렇게 된다. 6 X 3 X 2 X 3=108 그래서 108번뇌라는 것이다.

이 신륵사에서 나옹 스님이 돌아가셨다. 불교 언어로 열반하셨다. 이 나옹 스님은 왕의 명령으로 회암사를 건설하러 가실 때 많은 부녀자들이 선물을 준비해 드릴 정도로 유명한 스님이셨다. 왕은 스님이 너무 유명해서 밀양 쪽으로 보내려고 하였다. 밀양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이 곳을 들리셨는데 이곳에서 돌아가실 것 같은 생각이 들으셔서 여기서 머물다가 생을 다하셨다. 나옹 스님의 수제자로는 무학 대사가 있다.  

이 신륵사는 세종대왕릉을 지켜 주는 사찰이어서 다른 사찰 보다 조정에서 돈을 주어 여기는 좀 잘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사찰을 원찰이라고 한다. 여기에 있는 부도는 석종형 부도로 돌종 같이 생겼다. 이 곳에는 우리나라에서 잘 안나는 대리석으로 만든 탑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화강암이 제일 많은데 화강암은 조각을 하기가 어렵다. 신륵사를 보고 밑으로 내려가서 범종각에서 불음사보(범종, 법고, 운판, 목어)를 알아본 후 다시 정자로 갔다. 정자 아래로 흐르는 강 이름이 여강이다. 이 여강은 남한강에 속한 강으로 여주를 지나는 구간만 여강이라고 부른다. 절 앞에 있는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차에 탔다.

                                                                 목아박물관

목조각장 목아 박찬수 선생님이 지으신 사립 박물관인 목아박물관을 자유관람 했다. 3층짜리 전시장에는 아기자기하게 만든 불상과 예쁜 장승들 등 많은 상들이 있었다. ‘부처가 되고 싶은 나무’라는 영화를 보니 불상을 만들기가 엄청 힘들 것 같았다. 나무로 불상을 만들 때에는 중요한 3가지가 있다. 하나는 불상 뒤를 파 두는데 이유가 썩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뿌리 쪽에 있던 수분들이 밑으로 내려와서 마르지 않게 항상 얼굴은 뿌리 쪽에 조각한다. 그리고 얼굴은 나무가 서 있을 때 남쪽을 바라보던 면에 새긴다. 남쪽 면이 햇빛을 고르게 받기 때문이다.

엄청난 정성을 쏟아야 작품 하나가 된다. 정말 대단한 정성이다. 개인 박물관 관장이신 박찬수 선생님의 집중력이 정말 대단하다. 목아 박물관을 다 둘러 본 다음에 집으로 출발 하였다. 체험 탐방이 아무리 좋아도 집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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