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 한국역사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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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역에 집합을 해서 자동차를 .....


                                                                                 2006년 4월 30일

강남역에 집합을 해서 자동차를 타고 쮸욱~ 강화도 까지 갔다. 아이들이랑 놀면서 갔었는데 승완이가 토를 해서 냄새가 심했다. 그리고 차윤경 선생님께서 다른 일이 있으셔서 이번에는 김가희 선생님께서 보조를 해 주셨다.

제일 처음에 갔던 곳은 강화도에서 제일 중요한 강화 역사관이었다. 내가 작년에 머리를 맞았던 판넬도 여기 있었다. 어머니들께서는 가장 먼저 그 판넬이 고쳐졌는지를 확인 하셨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강화 역사관에 들어가기 전에 미션 3가지를 주셨는데 바로 첫째, 下馬비를 찾아서 누구 이하로는 말에서 내려야 하는지를 알아보아라! 둘째, 무엇을 하면 곤장 몇 대를 맞아야 하고 다른 무엇을 하면 곤장 몇 대를 맞아야 하는 지 알아보아라! 셋째, 탱자나무를 왜 심어 놓았는지 알아보아라! 였다. 각각의 정답은 첫째는 수령 이하가 내려야 한다. 둘째는 가축 방목 시 100대, 쓰레기 버리면 80대를 맞는다. 셋째는 적의 침입을 막으려고 심는 것 이다.

강화 역사관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옛날에 배웠던 것 복습이었다. 목판 새기는 방법을 알려주는 코너에서 복습을 하였다.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선사시대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예외로 청동기는 단군 왕검이라는 기록 때문에 역사시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구석기는 뗀석기를 썼고 신석기는 간석기를 썼다. 그리고 농사도 해서 곡식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의 차이가 심해져서 불평등이 생겨났다. 한반도의 최초의 나라는 고조선이었다. 또한 단군 왕검이 2000년 동안 산 것을 보아서 역사 학자들은 단군 왕검은 단지 왕의 직책 일뿐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한마디로 1명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고조선 때는 나라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법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결국 고조선은 한나라에게 멸망을 당하게 된다. 그 후 삼한이 생기고 각각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만들어지지만 신라가 통일을 하게 된다.

왕건은 제일 처음으로 진정한 통일을 하였다. 그때 발해가 멸망해서 고려는 발해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그 당시 고려는 완전히 문신들의 나라였다. 무신들은 천대를 받았기 때문에 의종 시대에 무신의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 노비들이나 천민들이 무신들을 그대로 따라 해서 난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것이 망이․망소이의 난과 만적의 난이다. 그때 바로 몽골이 침략을 했고 대구 부인사에 보관 되어 있던 초조대장경이 불에 타자 강화도로 천도했다.

강화도로 천도한 이유는 이러하다. 첫째, 그 당시의 서울인 개경과 가깝다. 둘째, 바닷길을 타고 배를 이용하여 세금 걷기가 편하다. 셋째, 몽골의 침입을 방어할 수 있다. 넷째, 알맞은 크기이다. 이렇게 네 가지 조건 때문에 강화도가 한때 고려의 서울이 되었다.

몽골의 침략 때 백성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것을 만들었던 자리로 후보지인 남해도와 강화도 선원사가 추정하는데 둘 중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는 모른다. 팔만대장경은 1236년부터 16년 동안 새겼다.

몽고한테 항복을 한 뒤 개경으로 와서 원 간섭 기가 시작되었다. 공민왕과 신돈은 개혁 정치를 펼쳤지만 실패했다. 이 배경 속에 호족과 같은 신진사대부가 나타나고 고려는 이들에게 멸망된다.

드디어 복습과 예습이 끝나고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본 것은 ‘청자진사연치문표형주자’였다. 모든 청자들은 비가 온 후의 하늘의 색이라고 하는 비색이다. 그리고 또 보니까 ‘강화동종’도 있었다. 이 ‘강화동종’은 성문을 열 때와 닫을 때 치는 종이라고 한다. 사인 버구라 스님이 만드셨다.   강화도 특산물은 화문석이라는 돗자리인데 왕골을 사용해 손으로 짜서 왕에게 진상하는 진상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땅과 강화도 사이로 흐르는 바다는 너무 좁다. 그래서 염하(鹽河)라고 한다. 바로 짠 강이라고 한다. 여기서 수비를 못하면 개경은 그대로 포위되는 것이다. 염하는 물살이 세다고 한다. 강화도는 성을 쌓았을 때 세 겹으로 내성, 중성, 외성으로 쌓았다. 그리고 외성에 탱자나무를 심은 것이었다. 몽골한테 항복을 하자 몽골이 이 세 성을 없애라고 해서 허물었다고 한다. 아예 강화도에 어떠한 건물이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되게 하였다. 동서남북 문이 있었는데 복원되어 있었다.

지형을 잘 파악해야 전쟁을 할 때 이길 수가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와 전쟁하던 병인양요, 미국과 전쟁하던 신미양요, 일본과 전쟁하는 운요호 사건등이 있었는데도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강화도는 일종에 요새여서 잘 지켜야 된다. 그래서 경고비가 있다. 강화도 해문 통과 하지 말라는 그런 내용이다. 그것이 현재 덕진진에만 남아 있다. 적이 해문으로 들어왔을 때는 우리 부대의 거미줄 공격 때문에 더 못 들어왔다고 한다. 어재연 장군님은 광성보에서 장렬히 싸우다가 돌아가신 분 중 한 분이시다.

강화역사관의 전망대를 지나서 고려궁터로 갔었다. 여기서 문을 통과 하는데 승평문이라고 써 있었다. 강화도에 유수부도 생기고 따라서 동헌도 생겼다고한다. 동헌을 가 보았다. 그 곳은 사또가 일하는 곳이다. 이부, 병부, 호부, 형부, 예부, 공부 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우열별장과 좌열별장도 있었는데 모자를 보니 군사적인 일을 하는 사람 같았다. 그 밑에는 이방청도 있었다. 그 옆으로 가보니 외규장각이 있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사람들이 귀중한 책을 다 뒤져서 가져가고 못 가져간 것은 다 태워 버렸다고 한다. 아주 나쁜 프랑스 사람들이다.

그 후 우리는 용흥궁에 갔다. 여기는 지금 전통 다도 예절을 교육하는 곳이다. 궁의 종류로는 행궁과 잠저 그리고 보통궁이 있는데 행궁은 왕이 피난을 갔거나 해서 잠시 들르는 궁이고 잠저는 임금님이 살던 곳이다. 순조가 아들 없이 죽자 이어나갈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가장 가까운 철종이 임금 직책을 맡아야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원래는 안 된다. 왕위 계승은 손아랫사람이 해야 되는데 철종은 순조의 삼촌으로 손윗사람이기 때문이다. 철종은 정조의 이복동생의 증손자이다. 철종은 궁 생활에 익숙하지 못해 외척 세력들이 대신 정치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당시는 나라가 혼란스러워서 백성들은 음식도 못 먹는 신세였다고 한다.

천주교는 해안 지역에 많이 선교가 되었는데 반대가 심했다. 왜냐하면 제사를 지내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성공회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왔고 아직도 미사를 지내고 있었다. 우리는 실례지만 한번 슬쩍 보고 나왔다. 성공회는 결혼을 하고 싶은 왕이 만들었다고 한다. 신부님이 부인을 여러 명 두고 결혼할 수 있다고 한다. 미사랑 비슷하게 성가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그랬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시 또 광성보로 갔다. 광성보에서 제일 먼저 간 곳이 광성돈대였다. 총 3개의 돈대가 있는 데 바로 손돌목돈대, 광성돈대, 용두돈대이다. 광성보에 해군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소대, 중대, 대대로 나누는 것처럼 군사를 보와 진으로 나누었지만 어느 한쪽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 광성돈대는 다리미모양, 오각형, 방패처럼 생겼다. 어제현과 어제순 장군님께서는 신미양요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이 순서로 있어서 초지진에서 지면 덕진진에서 싸우고 덕진진에서 지면 광성보에서 싸웠기 때문에 가장 용감한 군사들을 여기에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철종과 고종때 서양은 제국주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강대국들이 식민지를 만들려고 하였다. 신미순의총에는 신미양요로 돌아가신 분들이 몇 분씩 모아서 묻혀 있다. 손돌목 포대에 가서 손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손돌은 강화도로 가던 배의 선장이었다. 그런데 물살이 너무 거세서 착지를 못하자 첩자로 몰려 참형을 당하였다. 유언은 강화도로 가려면 바가지를 띄어 놓고 바가지가 움직이는 곳으로 따라가라는 것이었다. 다른 방법을 써도 안 되자. 손돌이 알려준 방법으로 도착을 했는데 갑자기 예고 없이 폭풍우가 몰아쳐서 손돌에게 제사를 지내었다. 요즘도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용두돈대로 갔더니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쓴 비석이 있었다.  덕진진에 있는 용두돈대는 긴 용 같이 생긴 성의 머리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용두돈대를 가기 전에 갔던 손돌목 포대가 그곳에서 보였는데 무덤처럼 보였다. 여기는 아주 물살이 빨라 손돌목 아이목숨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선원사지로 이동하였다. 먼저 선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팔만대장경을 만들던 곳이 여기라고 추측하고 있다. 여기 앞이 원래는 바다였다. 팔만대장경의 판을 소금물에 찌고 바닷물에 담구로 할 수가 있었다. 바닷물에 3년 동안 담그면 쪼그라들면서 울퉁불퉁 해진다. 그래서 다듬은 후 나무의 진을 빼기 위하여 소금물에 찐다. 나무로 만든 이유는 가장 편하고 먹이 잘 스며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16년이라는 시간 안에 이 대장경을 만들었다는 것은 짧은 시기에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다시 만든다면 16년이 넘게 걸릴 것이라고 계산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글자의 크기가 똑같고 오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는 원래는 야트막한 야산이었는데 발굴을 해보니 선원사라고 하였다. 금당 주춧돌도 발견되고 귀한 기와들이 발견이 되었다. 이 선원사에는 목탁소리를 내는 소가 있는데 과일을 먹으면 입맛을 다시며 내는 소리가 목탁 소리처럼 들린다고 과학자들이 추측하고 있다. 이 소들을 동물이라 생각하지 않고 보살로 모신다고 한다. 한 우보살만 경기도가 고향이고 나머지 두 자매 보살은 전라도가 고향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란 TV 프로그램에 2번이나 나왔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고려보다 조선을 더 중요시 한 것 같다. 그리고 교재에 있는 일정에 많은 부분들이 빠져서 좀 아쉬웠고 오면서 본 하울의 성을 끝까지 못 본 것도 아쉬웠다. 다음번 조선 기행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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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로! (청동기-고조선)

정준영
201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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